부여 사택지적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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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정보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는 [[백제]] [[의자왕]] 때 사택지적(砂宅智積)이 세운 비석이다.▼
|소재_국가=[[대한민국]]
|유형=[[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그림=
|이름=사택지적비<br/> (砂宅智積碑)
|지정_번호=101
|소재지=[[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br/>[[국립부여박물관]]
|제작_시기=[[백제시대]]
|지정연월일=[[1983년]] [[9월 29일]]
}}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는 [[백제]] [[의자왕]] 때 사택지적(砂宅智積)이 세운 비석이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비석이며, 높이 102[[센티미터]], 너비 38센티미터, 두께 29센티미터인 비에 56자가 남아 있다. [[1948년]] [[부여읍]] 관북리 도로변에서 발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부여에 [[신궁 (신토)|신궁]](神宮)을 만들면서 그 도로에 깔려고 부여 읍내에서 초석이나 지대석 등을 가져와 모아두었는데, 광복 후 그 석재 속에서 학자들이 발견했다. 문체는 사륙변려체이고, 글씨체는 구양순체이다.
비문의 내용은 인생의 덧없음을 서글퍼하며, 불교에 귀의하여 금으로 법당, 옥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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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계대백과}}
[[분류:충청남도의
[[분류:한국의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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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립부여박물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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