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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이즈]](1154년 - 1160년)
# [[알아디드]](1160년 - 1171년)
 
파티마 왕조의 멸망
 
당시 무능한 칼리프 대신 비지르(재상)인 샤와르가 섭정을 하고 있었다. 샤와르는 이러한 명분상의 지배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햇고,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한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을 사이가 틀어진 아들 카릴에 의해 발각되었고, 카릴은 하렘에 틀어박혀 있는 칼리프의 허락을 받아 아버지를 몰아내기 위한 원군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원군을 바로 장기스 왕조의 2대 술탄인 누레딘에게 요청했다. 당시 누레딘은 장기로부터 물려받은 에데사와 알레포의 영토에서 제 2차 십자군을 패퇴시키는 등 십자군에 연전연승하며 상승궤도를 타고 옛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였던 다마스쿠스를 비롯하여 형의 영지였던 모술과 이라크 지방까지 지배 하에 두고 있었다.
1169년 1월 2일 누레딘은 곧장 자신의 수도로 삼고 있는 다마스쿠스에서 8천 명의 기병을 편성하여 드물게도 쿠르드족 출신의 장군인 시르쿠(Shirkuh)가 이끌드록 했다. 기병으로만 편성했다는 것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통일이라는 이슬람의 숙원사업을 재빠르게 자신의 손으로 이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육일 후인 1월 8일 시르쿠의 군대는 파티마 왕조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햇다. 재상 샤와르는 이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모습조차 나타내지 않았다. 이들을 부른 카릴은 기존의 합의대로 파티마조의 전 영토 중 3분의 1 가량을 누레딘에게 넘기기로 한 것을 명기한 증서에 조인한다. 이로써 이집트는 사실상 누레딘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시르쿠가 카이로를 잠시 비운 사이, 조카인 살라딘이 샤와르의 저택을 습격해 살해했다. 시르쿠는 카이로로 돌아와 죽은 샤와르 대신 자신이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칼리프도 곧바로 이를 승인했다. 두 달 후인 3월 23일, 시르쿠가 급사했다. 원인은 욕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친 탓이라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마 칼리프는 서른 한 살의 살라딘을 새로운 재상으로 임명했다. 이를 보고받은 누레딘은 시르쿠처럼 자신의 신하일 것임을 당연하게 여겼고,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왕 아모리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170년 파티마조의 마지막 칼리프가 젊은 나이임에도 세상을 떠났다. 파티마조는 그 명맥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실권력자인 살라딘이 다음 칼리프를 옹립하지 않음으로서 왕조가 단절되어 '''파티마 왕조가 멸망하게 된다'''. ( 살라딘은 당시 금요일의 예배 때 신도들도 하여금 기도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외우게 하라는 누레딘의 지시를 받았다. 시아파인 이집트인들이 앙숙인 수니파 술탄의 이름을 외우게 하는 것은 난처한 일이어서 명령을 거두어 달라고 하려 했지만, 누레딘은 명령에 복종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살라딘의 아버지를 카이로로 보내 설득하게 한다. 하지만, 이 때, 시의적절하게 칼리프가 세상을 떠나면서 더 이상 시아파가 존재하지 않게 될 상황이 왔기에 살라딘은 다음 칼리프를 옹립하지 않음으로서 그 기회를 활용한다.)
 
{{토막글|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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