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Lexus (토론 | 기여)
잔글 →‎역사: 보정
Lexus (토론 | 기여)
잔글 →‎역사: 보정
21번째 줄:
{{인용문|[[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700년이 한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한 대주원(大周元)이 되니, 이것이 황제(皇帝)와 왕패(王覇)의 치난흥쇠(治難興衰)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부터 지금([[1362년]])까지 이미 3,600년이므로 주년(周年)의 기회가 됩니다.}}
 
여기서 [[백문보]]가 언급한 단군기원은 현재의 단기([[기원전 2333년]])와 연대가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당시의 당고(唐高, 唐堯), 즉 요가 즉위한 해의 간지(干支)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많아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으나, [[중국]] 사마광(司馬光)의 《계고록(稽古錄)》, 유서(劉恕)의 《자치통감외기(資治通鑑外紀)》에 있는 무진을 참고하여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기록도 문헌에 따라 다르니 정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 帝堯)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으며, 그 뒤 164년이 되는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武王) 원년 기묘에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