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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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 帝堯)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으며, 그 뒤 164년이 되는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武王) 원년 기묘에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승휴의 서술에는 연대상 착오로 보인다. [[주나라]] 무왕 원년은 기묘년으로 [[기원전 1122년]]에 해당되는데, 이로부터 [[단군]]이 신이 되고 나서 [[기자]]가 나라를 세우기까지의 기간인 164년을 소급하면 [[기원전 1286]]년이 되며, 여기서 다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 1,028년을 가산하면 [[기원전 2313년]]이 된다. 이것은 요임금 제고, 즉 제요가 나라를 세웠다는즉위하였다는 무진년([[기원전 2333년]])보다 20년이 늦다.
 
그러나 《[[세종실록]]》 [[조선 세종|세종]] 18년 12월 정해조에 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유사눌(柳思訥)이 상서한 내용에 “신(臣)이 《[[세년가]](世年歌)를 상고해 보건대 [[단군]]이 처음에는 [[평양]]에 도읍했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에 도읍했으며, [[은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 아사달산에 들어가서 신이 되었는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1,048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지금도 사당이 아사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고 한 것은 1,048년의 잘못으로 보이며, 그렇게 본다면 [[기원전 2333년]]이 합당하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현재의 단기 연대를 확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서거정]]이 만든 《[[동국통감]]》이 최초인데 단기 곧 단군기원은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였다. [[단군]]의 즉위가 [[중국]]의 [[요임금]] 즉위 25년에 이루어졌다는 [[조선]] 초기의 역사 책 《[[동국통감]]》의 기록이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46|제목=우리나라 개국(開國)의 기원(紀元)|성=|이름=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작성일자=2012-10-09|출판사=수원일보|확인일자=2013-01-2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