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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 즉위 후에 사례감의 장인 장앙태감太監이 되었고, 문서의 개편 등의 전횡을 행하였다.
 
9번(혹은 11번)이나 조선을 방문했으며, 조선의 처녀들 가운데 미인 5명을 뽑아 공녀로 선발하기도 하였다. 그 차례는 1403년 2월과 10월, 1406년 4월, 1407년 5월, 1408년, 1409년 5월, 1411년, 1417년, 1419년 등이었다. [[태종(조선)]]때 주로 방문했으며 마지막 방문은 [[세종(조선)]]때 있었다. 1406년에는 [[제주도]]를 정탐하기 위해 법화사의 구리 불상을 실어가기로 했는데, 태종이 먼저 손을 써 [[전라도]] [[나주]]에서 불상을 받아가게 하였다. <ref> http://blog.daum.net/jhkim50/15975493 , 이한우의 조선이야기, 명나라 제주정탐 막아라 </ref> 1407년에는 [[태조(조선)]] 때의 보물인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받아내었다. <ref> http://fornirvana.egloos.com/370681 ,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명나라에 바친 세종 </ref> 조선의 처녀들 가운데 미인 5명을 뽑아 공녀로 선발하기도 하였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조선 출신이자 [[정통제]] 연간의 환관으로 나오나 이것은 출신 고증과 시대가 잘못된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