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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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바르드나제 이후의 조지아(그루지야)==
[[Image:2OP 30.JPG|thumb|[[장미 혁명]]: 시청 앞의 시위대, [[트빌리시 자유 광장]] ]]
[[미하일미헤일 사카시빌리]], [[니노 부르드자나제]]와 [[주랍 즈바니아]]가 이끄는 민주주의자의 강력한 제휴는 셰바르드나제의 정부의 2004년 11월 2일의 위회 선거에 반대하여 연합되었다. 그 선거는 뻔뻔스럽게 조작된 것으로 널리 간주되었다. 그에 대한 반향으로, 반대파들은 트빌리시 대로에서 대규모의 반대 시위대를 조직했다. 팽팽한 긴장 상태로 2주일이 지나고, 셰바르드나제는 2003년 11월 23일에 사임하였고 부르드자나제에 의해 임시 원칙의 대통령으로 교체됐다.
 
1월 4일, 미하일미헤일 사카시빌리는 [[2004년 조지아 대통령 선거|2004년 조지아(그루지야) 대통령 선거]]에서 96% 대다수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월에는 헌법 개정안이 의회에 갑자기 나타나 대통령의 권한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게 강화되었고 차기 총리 제도를 만들었다. 주랍 즈바니아가 총리로 임명했고 임시 대통령이었던 니노 부르드자나제는 의장이 되었다.
 
새 대통령은 정부에 나타난 많은 난관들과 직면했다. 23만명이 넘는 [[국내실향민]]들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감에 시달렸다. 분리주의자들의 지역인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의 평화는 러시아와 [[국제 연합]]에 평화유지군과 국가간 기관들에 의해서 감독되었고 상황은 위태위태했다. 수년의 경제 발전과 협상은 지역간 적대감정의 극복이 요구됐다. 상당한 경과는 남오세티야-조지아(그루지야) 충돌에 대한 협상에서 다뤄졌고 협상들은 조지아(그루지야)-압하스 충돌에 대한 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Image:Saakashvili n bush.jpg|thumb|미하일미헤일 사카시빌리(오른쪽)과 [[조지 W. 부시]]]]
장미 혁명 이후에, 조지아(그루지야) 정부와 준-분리주의 아자리아 지도자 [[아슬란 아바쉬제]]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아바쉬제는 트빌리시 당국이 공문서로 [[아드자라에]] 보낸 사카시빌리의 요구를 거절했다. 양측 모두 군대를 동원했고 전쟁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사카시빌리의 최종 제안과 대규모의 거리 시위대는 아바쉬제가 사임하고 조지아(그루지야)를 떠날 것을 강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