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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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제1회 결집}}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다음 해에 [[마하가섭]]의 주재로 [[왕사성]]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제1회]] [[결집]]이 열렸다. [[아난]](阿難)이 [[경장|경]](經)을 독송하고 [[우바리]](優婆離)가 [[율장|율]](律)을 송출(誦出)하여, [[원시불교]]의 기본 경전과 계율이 확립되었다. 아난이[[아난]]이 독송한 경은 후대에 《[[아함경]](阿含經)》이라고 불리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제1결집">[http://donation.enc.daum.net/wikidonation/ency.do?vol=025&code=001006001000000000#001006001002004000 "제1결집"]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refbr>"제1결집:
第一結集 불타의 설법은 주로 구화(口話)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불타가 입적하게 되자 그의 가르침의 내용이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질 것인가가 의심스러워졌다. 이에 불타의 교법(敎法)을 옳게 파악해 놓지 않으면 사이비 설법이 세상에 나돌아 결국에는 정법정률(正法正律)이 없어지게 될 것임을 두려워한 마하가섭은 불타의 입멸 이듬해의 우계(雨季)에 왕사성 밖의 칠엽굴(七葉窟)에 500명의 비구를 모아놓고 불타의 가르침에 대한 결집(結集)을 거행하였다. 결집이라 함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가 이해하고 파악한 불타의 가르침으로서 다시 교단이 확인하는 일이다. 이것은 불타가 남긴 가르침의 산일(散逸)을 막고 교단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때의 결집을 오백결집(五白結集)이라 하며,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아난(阿難)이 경(經)을 독송하고 계율을 보지(保持)함에 으뜸인 우바리(優婆離)가 율(律)을 송출(誦出)하였다. 경이라 함은 교리와 사문에 관한 설법이며, 율은 행위와 교단에 관한 규정이다. 그러나 이 결집으로 경과 율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제3회 후에도 몇회의 결집이 있었다. "</ref>
 
[[대중부]]의 전승에 따르면, [[제1회 결집|제1회]]의 칠엽굴(七葉窟)에서의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여러 승려들은 [[부루나]](富樓那)의 주재로 굴외결집(窟外結集)이라는 것을 열어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이와 같이 불교 교단의 밑바닥에서는 신구의 두 경향이 대립하였다.<ref name="근본2부의 분열과 부파불교의 성립"/> 굴외결집에 의해 형성된 경전을 잡경(雜藏)이라 하였으며, 이 가운데는 [[대승 불교]] [[대승경전|경전]]의 전신(前身)이 된 《[[방광경]](方廣經)》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