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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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이오 섬|이오지마]]는 [[도쿄]] 남쪽의 1,080킬로미터에, [[괌]] 북쪽 1,130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섬의 표면이 대부분 [[황|유황]]의 축적물로 뒤덮여 있어 '
[[일본군]]은 [[1941년]] 개전 당시, 해군 전투대 약 1,200명과 육군 병력 3,700명 내지 3,800명을 인근 [[지치지마 섬]]에 배지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가 이오지마를 관할하고 있었다. 개전 후에 남방 전선과 일본 본토를 묶는 항공 수송의 중계지점으로서 이오지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해군이 이오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병 1,500명과 항공기 20기를 배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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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 미군은 [[마셜 제도]]를 점령하면서 [[추크 제도]](Chuuk Islands)에 대규모 공습을 실시했다. 이에 대항해 일본 대본영은 [[캐롤라인 제도]]와 [[마리아나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를 묶는 방어선을 '절대 국방권'으로 지정해 사수를 결정한다. 방위선 수비 병력으로서 오바타 히데요시(小畑英良)가 지휘하는 제31군이 편성되었다. 그 밑에 오가사와라 지구 집단 사령관에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이 취임했다. 이오지마에는 3월부터 시작해 4월까지 증원부대가 도착해 총병력은 5,000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1944년]] 여름, 미군은 [[마리아나 제도]]를
따라서 미군 태평양 통합작전본주는 이오 섬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항공기지를 파괴한 뒤 미군의 전진 항공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오 섬 공격을 결정했다.
{{토막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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