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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정보
| 소재_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 이름 = 창덕궁 낙선재</br> (昌德宮 樂善齋)
| 지정_번호 = 1764
| 지정연월일 = [[2012년]] [[3월 2일]]
| 해지연월일 =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번지</br> 창덕궁(사적 제122호)
| 소유자 = 국유
| 수량 = 1동(정면 6칸,측면 2칸)
| 연면적 =
| 좌표 =
| 제작_시기 = [[조선시대]]
| 비고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
▲[[파일:Nakseonjae area (courtyard), Changdeokgung - Seoul, Korea.JPG|thumb|200px|낙선재]]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에 지어진 [[창덕궁]]의 건물이다. 본래 이름은 낙선당이었으며, 창경궁에 속해 있었다.<ref>《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204p, 송용진, 2005</ref>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대한제국 고종|고종 황제]]도 이곳에서 지낸 바 있으며,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때 [[대한제국 순종|순종 황제]]도 내전 대신 낙선재에 머물렀다. 이곳은 황족들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숨졌으며, [[1963년]] 고국으로 돌아온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는 각각 [[1970년]]과 [[1989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 사망했다.
== 같이 보기 ==
* [[창덕궁]]
== 주석 ==
<references/>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12,17640000,11|창덕궁 낙선재 (昌德宮 樂善齋)}}
{{토막글|건축}}
{{토막글|미술}}
{{대한민국의 문화재}}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
[[분류:조선의 미술]]
[[분류:창덕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