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축구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r2.7.2+) (로봇: fr:Yangzee FC에서 fr:Yangzee Football Club(으)로 바꿈 |
편집 요약 없음 |
||
26번째 줄: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을 누린 김형욱이 직접 팀 창단을 주도하고 관리했기 때문에, 양지팀은 중앙정보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양지'라는 이름 자체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슬로건에서 따온 것이었으며, 선수들의 숙소도 [[중앙정보부]]가 있던 서울시 이문동에 마련했다.
일부에서는 양지팀을
==역사==
===설립===
[[1966년 축구 월드컵]]에서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축구팀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프로 축구가 있기 전이었으므로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적인 지원책을 강구한 것이다. [[육군 축구단]], [[해군 축구단]], [[공군 축구단]], [[해병대 축구단]]등 군에 입대한 병사 뿐 아니라 당시 입대 연령대의 축구 선수들을 모두 모아서 축구팀을 만들었고 '황금 다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최정민 (1930년)|최정민]]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임명했다. 결국 [[이세연]], [[김호]], [[김정남 (축구인)|김정남]], [[서윤찬]], [[정병탁]], [[김삼락]], [[이회택]], [[임국찬]]등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모을 수 있었다.
37번째 줄:
===해체===
양지 축구단은
양지 축구단은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체제 경쟁이라는 정치적 논리로 설립된 팀이었으나 대한민국의 축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양지에 소속되었던 여러 선수들은 축구단이 해체된 이후에도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51번째 줄:
== 참고 자료 ==
<references/>
[[분류:군ㆍ실업ㆍ금융 축구 클럽|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