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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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새로운 국가 건설의 원동력을 제공해준 이가 [[무학대사]]였고, 그로 인하여 무학의 지위는 더욱 높아졌다. 무학은 단순히 국왕과 가까운 권승(權僧)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고려 충숙왕]](1328)때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스님(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던 [[회암사]]는 지공과 [[혜근|나옹]] 그리고 무학까지 고려말 조선초기의 최고의 [[선승]]으로 모시고 있는데 이러한 [[무학대사]]는 [[선승]]으로써 [[풍수지리]]에도 해밝아 [[서울]] 도성의 위치를 잡은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큰 스승이라는 의미의 대사(大師)로 불려지는 이유이다.<ref name="나옹제자무학"/><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29351|제목=천보산과 회암사(檜巖寺)의 국사 무학대사|이름=김산 홍재인문학연구소장|작성일자=2012-12-03|출판사=경기일보|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01-15}}</ref>
 
== 관련 작품 ==
=== 드라마 ===
* 《[[대풍수]]》([[SBS]], [[2012년]]~[[2013년]], 배우:[[안길강]])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