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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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와 [[무학]](無學)이 언제부터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조선 태조|태조]]의 꿈을 풀어 주면서 왕이 될 운명이라고 한 이야기가 두 사람이 급속도(急速度)로 가까워진 듯하다. [[조선 태조|태조]]가 고려 말에 [[홍건적]]과 왜구(倭寇)를 물리치면서 명성을 날리던 중 어느 날 밤 닭이 우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도 신기해서 친구인 [[무학]]을 찾아가 꿈을 이야기했더니 [[무학]]이 큰 절을 하면서 이제 왕이 되겠습니다라고 한 이유는 닭이 ‘꼬끼오’하고 우는데 꼬는 한자(漢子)로 고(高)이고 까는 한자로 귀(貴)이고 요는 한자로 위(位)인데 이 세 마디 말을 합치면 고귀위(高貴位)인데 이는 높고 귀한 자리로 바로 왕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이성계(李成桂)는 이 꿈을 이용해 자신의 왕업을 생각하고 실천하였으며 결국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여 [[조선]]을 세웠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원동력을 제공한 사람이 [[무학]]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무학의 지위는 더욱 높아졌다. 무학은 단순히 왕과 가까운 권승(權僧)이 아니라서인지 [[고려 충숙왕]][1328년]때 [[인도]]에서 [[원]](元)을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 규모 사찰로 중창하였던 [[회암사]](檜巖寺)는 지공(指空)과 [[혜근|나옹]]과 무학까지 려말선초(麗末鮮初) 최고 [[선승]]으로 다루는데 이런 [[무학]]은 [[선승]]으로서 [[풍수지리]]에도 해박(該博)해 [[서울]] 도성 위치를 설정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ref name="나옹제자무학"/><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29351|제목=천보산과 회암사(檜巖寺)의 국사 무학대사|이름=김산 홍재인문학연구소장|작성일자=2012-12-03|출판사=경기일보|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01-1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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