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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형'''(金士衡, [[1333년]] ~ [[1407년]])은 [[고려]] ~ [[조선]]시대의 초의 문신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6JOa_A1341_1_0001730}}</ref> 본관은 [[안동 김씨|(구)안동]](安東)이며 [[자 (이름)|자]](字)는 평보(平甫), [[호 (이름)|호]](號)는 낙포(洛圃), [[시호]]는 익원(翼元)이다.
 
[[김방경]](金方慶)후손으로현손으로 대광 김순(金恂)의 증손이자 상락후(上洛后) [[김영후]](金永煦)의 손자이며 부밀직사사(副密直司事)로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서된 [[김천]](金)의 아들로서 [[문하시랑]]찬성사로 판상서사사와 병조전서를 겸임하였으며 1등 개국공신에 책록되고 이어 문하우시중에 상락백(上洛伯)으로 봉해졌다. [[안동 김씨]](安東金氏) 익원공파(翼元公派)의 파조(派祖)이기도 하다.
 
== 생애 ==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인 [[평장사]] [[김숙승]](金叔承)의 10대손이며<ref>김숙승(金叔承)-김일긍(金日兢)-김이청(金利請)-김의화(金義和)-김민성(金敏成)-김효인(金孝印)-김방경(金方慶)-김순(金恂)-김영후(金永煦)-김천(金)-김사형(金士衡)</ref>, [[김방경]](金方慶)4대손이다현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출사하여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후 감찰규정(監察糾正) 등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이후 [[조준]](趙浚)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고 [[1377년]] 집의(執義)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가 되었고 [[1390년]], 밀직지사(密直知使)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 특진하였고 뒤에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츺)와 이초(李初)의 무고로 발생한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당을 둘러싸고 당시 찬성사였던 [[정몽주]](鄭夢周)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1392년]] [[7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조선]]왕조를 성립하였다. 조선이 개국되자 승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전서(兵曹典書)를 겸임하였으며 곧 응양위 상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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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조부: 대광 [[김순]](金恂)
* 조부: 상락후(上洛后) [[김영후]](金永煦)
* 부친: 부밀직사사(副密直司事) 증 [[보국숭록대부]] [[김천]](金)
* 형: [[김사렴]](두문동72현중 한분)
* 모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