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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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영제 사망 이전===
백정의 딸이라는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지만 후궁에 들어와 영제의 총애를 받았고 [[176년]] 아들 유변(劉辯, 훗날의 [[후한 소제|소제]])을 낳았다. 영제의 첫 번째 황후인 [[송황후 (후한)|황후 송씨]]가 무고로 죽은 뒤 [[180년]] [[12월 5일]] 황후로 책봉되었다. 아버지는 무양후(舞陽侯), 어머니는 무양군(舞陽君)으로 봉해졌다. 하씨는 성정이 투기가 심해 영제의 총애를 받던 [[왕미인]]이 회임하자 그녀를 독살했다. 영제는 분노해서 하씨를 폐위시키려 했지만 환관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제 사망 이후===
189년,[[후한 영제]]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아들 [[후한 소제 (13대)|유변(劉辯)]]이 14세의 나이에 소제로 즉위하자 하씨가 황태후가 되어 임조청정을 했다.
영제의 생모인 [[동태후 (후한)|동태후(董太后)]]가 정사에 관여하려 할 때마다
하진이 하태후에게 다시 십상시를 처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장양의 무리는 하진을 죽였다. 십상시의 대부분은 하진의 부하 [[원소 (후한)|원소]], [[원술]], 오광 등에게 죽임을 당했고 환관의 편이었던 하묘도 오광과 그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말년===
이후 권세를 잡은 동탁이 소제를 폐하고 [[후한 헌제|진류왕]]을 헌제로 즉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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