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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년]] 바이바르스는 몽골군의 포로가 되어 노예상인의 손에 넘어갔다. 신체적 특징 때문에 아무도 사지 않았지만 마술에 뛰어났기에 [[아이유브 왕조]]의 귀족이 그를 사서 술탄 [[살리흐|앗 살리흐 나짐 앗 딘 아이유브]]의 맘루크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출세을 거듭해 술탄의 경호대장이 되었다.
 
맘루크 군인으로 최초의 활약은 [[1249년]] [[프랑스의 루이 9세]]에 의한 [[제7차 십자군]] 때였다. 이집트는 술탄 사리프가 병으로 인해 군의 통제가 어려워지게 되자, 그때 맘루크 군단에서 부재한 군단장을 대신하여 지휘를 맡은 바이바르스가 분전하여 [[1250년]] [[만수라만스라 전투]]에서 루이 9세를 격파하고 그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그때 이집트에서는 술탄 살리흐가 죽고, 이집트 지배자는 [[투란 샤]], [[샤자르 알 두르]], 술탄 [[아이바크]]순으로 지배자가 바뀌어갔다. 맘루크에 대해 반항등을 거쳐 술탄 아이바크에게 일인 주도권이 돌아간 1254년 아이바크는 바이바르스 소속이며 맘루크군의 군단장 아크다이를 살해했다.
[[1277년]] [[아나톨리아]]의 몽골군(실제로는 몽골에게 복속한 투르크인)을 격파하고 다마스쿠스에 개선한 그 직후 복통을 호소하다 사망했다.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독살설도 있으나,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확실하지 않다.
 
그의 사후, 술탄의 자리는 아들인 [[바라카]], [[사라미슈]]가 뒤를 이었고, 그들에겐 실력주의의 맘루크 왕조를 이끌 재능이 없었다. 그 때문에 차례로 폐위당해 세습되지 못하고, 맘루크 왕조는 [[카라운칼라운]]이 뒤를 계승하였다.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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