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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조선]] [[충청북도]] [[제천군]]
|사망일= [[1791년]] [[7월 20일]]
|사망지= [[조선]]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경안면 덕곡리
|사망원인= 병사 (노환)
|거주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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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기와 소년기 ====
유년 시절에는 하급 관리이던 조부를 따라서 여러 곳에서 보냈고, 1726년(영조 2)부터 무주에 복거하던 그의 일가는 1735년 할아버지 안서우가 사망하자 1736년(영조 12) 25세 때 선영이 있는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경안면(慶安面) 덕곡리(德谷里)에 정착하였다. 그 뒤 중년 이후에는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 덕곡(德谷)에 정착하여 순암(順菴)이라는 서실을 짓고 일생을 마쳤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 암기력이 뛰어났는데 할아버지의 잦은 관직 이동과 아버지 안극의 입지에 따라 오랜 동안 정주지가 일정하지도 않은 환경이었다. 10세 때 ≪ 소학 ≫ 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 뒤 일정한 스승이나 사문(師門)도 없이 학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학(經學)은 물론, 역사·천문·지리·의약 등에 걸쳐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러나 [[갑술환국]]과 [[1701년]] [[장희빈의 옥사]]로 [[남인]]은 몰락하였으며, 청소년기 시절이던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남인]] 대다수가 중앙정계에서 숙청되었으므로, 그는 일찍이 관직을 단념하고 과거에는 단 한번도 응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