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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鄧艾, [[197년]] ~ [[264년]])는 [[중국]] [[삼국 시대 (중국)|삼국시대]] [[위 (삼국)|위나라]]의 장군이며, [[자 (이름)|자]]는 사재(士載)이다. [[촉한|촉나라]] 정벌에 가장 큰 공을 세웠으나, [[종회]](鐘會)의 모함에 의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
 
[[255년]] [[강유]]가 [[왕경 (조위)|왕경]](王經)을 대패시키고 적도(狄道)를 포위하자, 재빨리 적도로 이동하여 포위가 풀어지게 한 공으로 안서장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유]]가 다시 쳐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등애는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가 얼마 후 쳐들어온 [[강유]]를 상대로 단곡(段谷)에서 승리했다. 위나라 조정에서는 등애를 등후(鄧侯)로 봉하고, 진서장군(鎭西將軍)으로 승진시키고 도독농우제군사(都督隴右諸軍事)를 겸하게 했다.
 
이후 [[강유]]는 [[257년]]과 [[262년]]에도 쳐들어왔으나 등애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ref>위서 등애전</ref>
 
=== 촉나라 정벌 ===
[[파일:등애.png]]
 
==주석==
<references/>
{{전임후임
|전임자=[[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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