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폰 힌덴부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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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 Bild 183-C06886, Paul v. Hindenburg.jpg|thumb|230px|파울 폰 힌덴부르크]]
'''파울 루트비히 폰 베네켄도르프 운트 폰 힌덴부르크'''({{llang|de|Paul Ludwig von Beneckendorf und von Hindenburg}} {{소리|De-PaulvHindenb-long.ogg}}, [[1847년]] [[10월 2일]] ~ [[1934년]] [[8월 2일]])는 [[독일]]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바이마르 공화국독일]] 제2대 대통령(1925년~­1934년)을 지낸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내각 수상으로 임명해 [[나치 독일]] 성립의 길을 열었다.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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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 ===
선거 후 [[독일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서 히틀러는 의회에 [[전권 위임법]]을 제출했다. 당시 사회 민주당과 공산당의 당원이나 지지자가 체포되면서 이 법은 자연스럽게 통과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는 이로 인해 소멸되었으며, [[바이마르 공화국독일]]도 최후를 맞이했다. 힌덴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영웅으로서 국민들의 열렬한 지자가 있어 수상에 오른 히틀러도 힌덴부르크를 배려했으나, 이 배려의 동기는 존경이 아니었다. 마지막 의회가 개회했을 때 히틀러는 참석한 힌덴부르크에게는 독일황제에게 행하는 프로이센식의 경례를 했지만 이것은 나치의 '제3제국'이 독일제국과 연속하되,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단절'을 강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왕실 지지자나 보수파는 열렬히 지지했는데, 힌덴부르크라 하는 개인은 이미 프로이센 그 자체라 히틀러에게 많은 이용가치가 있었다.
쇠약해진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히틀러가 문병하러 왔을때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보고 '황제 폐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이미 히틀러와 [[독일의 빌헬름 2세|빌헬름 2세]] 조차 구분하지 못했음을 의미했지만, 히틀러의 위엄을 확립하기 위해 조작된 낭설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사후에 제정을 부활시킬 생각이 있었는지 빌헬름 2세의 적손인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을 황제에 즉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유언장은 묵살되었으며 제정복고는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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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통령
|전임자 = [[발터프리드리히 지몬스에베르트]]
|후임자 = [[아돌프 히틀러]]
|대수 = 42
|임기 = [[1925년]] [[5월 12일]] ~ [[1934년]] [[8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