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평 (삼국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70 바이트 추가됨 ,  8년 전
편집 요약 없음
[[231년]] 제갈량이 기산으로 출병했을 때 따로 남쪽을 지켰으며, 장합이 공격해왔으나 굳게 수비해 막아냈다.
 
[[234년]] 제갈량이 죽고 [[양의]](楊儀)가 군을 인솔해 퇴각하나 양의와 사이가 나빴던 [[위연]](魏延)이 명을 위반하고 난을 일으킨다. 왕평이 선봉에 나서나서서 위연과 병사들을병사들에게 {{인용문2|[[승상]](제갈량)께서 막 돌아가셨는데 승상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너희들이 어찌 이런 더러운 일에 몸을 담았는가!}}라고 꾸짖자외치자 그의 병사들이 두려움을 떨어 뿔뿔이 흩어져 위연의 난은 쉽게 진압당하게 된다. 제갈량 사후 후전군(後典軍), 안한장군(安漢將軍)에 봉해져 [[오의]](吳懿)의 부장이 되어 한중을 지키고, [[237년]] 안한후(安漢侯)가 되어 오의 사후 한중을 지켰고 [[243년]] 전감군(前監軍), 진북대장군(鎮北大將軍)에 임명된다.
 
[[244년]] 위의 대장군 조상(曹爽)이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침공해오자 다른 이들이 후퇴해서 수비하자고 주장했으나 왕평은 이에 반박하고 호군(護軍) 유민(劉敏)과 함께 1천명의 군사로 흥세산(興勢山)에서 [[비의]](費禕)의 지원이 올때까지 위군을 저지해 격퇴시키는데 성공한다.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