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식민성 그룹"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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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식민 유산은 오늘날까지 적어도 서로 상관 관계가 있는 세 가지 영역에서 감지된다. 이는 각각 '인종주의, 인식적 유럽중심주의, 삶의 방식의 (난폭한 혹은 동의에 의한) 서구화'이다. 근대성/식민성 그룹이 제시한 세 가지 핵심 범주인 '권력의 식민성, 지식의 식민성, 존재의 식민성'은 이 세 가지 영역의 문제점을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키하노는 '''권력의 식민성'''이 16세기에 확립된 특정한 '사회적 위계질서'를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회적 위계질서로 인해 식민지에서 부의 집중과 사회적 특권은 개인의 [[인종]]과 유전적 [[표현형]]에 의해 규정되게 되었다. 그 정점에는 '[[백인]]'이 있고, 그 아래에는 '[[인디오]]'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흑인]]'이 위치해 있다. [[노동]]의 사회적 [[분업]]도 바로 이 위계질서에 의거하여 확립된다. 미뇰로는 이러한 삼분법의 이념적 뿌리가 [[성서]]적 신화, 즉 [[대홍수 (신화)|대홍수]] 후에 살아남은 [[노아]]의 세 아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담고 있는 성서 이야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야벳]]의 후손인 유럽인들이 [[셈]]의 후손인 아시아인과 [[함]]의 후손인 아프리카인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유럽인의 관념이 성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고메스는 '혈통적 순수성'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는 인종이나 피부색과는 관계가 없고, 유럽인 조상을 두었다는 상상의 혈연 의식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권력의 식민성은 인종주의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백인화'(blanqueamiento cultural),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늘 유럽 모델을 모방하려는 염원으로도 표현된다. 제도, 풍습, 사유, 교육, 예술 등등에서 유럽과 미국에 유사할 경우에만 권력에 접근할 수 있다.
 
기술과학적 [[합리성]]이 유럽 식민주의의 창출과 팽창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18세기부터 다른 형태의 (전통적 혹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인식'(episteme)들을 배제하면서 지식 생산에서 유일하게 유효한 모델로 변하게 된 현상을 '''지식의 식민성'''이라고 부른다. 키하노는 15~16세기의 복음화가 이미 원주민과 흑인노예들로 하여금 그들만의 지식 생산 형식을 비하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식민 지배자들의 지식 생산 형식을 사회적 권위(prestigio social)로 여기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카스트로고메스는 18세기 부르봉 개혁 때부터 '알기'(conocer)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한 채 그가 '0도의 히브리스'(la hybris del punto cero)라고 부르는 오염되지 않은 관찰 지점에서 냉철하고 체계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관념이 [[스페인어]]권 식민지에 강요되었다고 설파한다. 아메리카를 향한 유럽의 식민적 팽창은 이렇듯 세계에 대한 인식적 다양성(multiplicidad epistémica)을 공격하고, 현재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단 한 가지 유효한 지식생산 체계를 강요했다. 지배적 '인식'(episteme)의 보편적 규율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지식은 '전(前) 과학적 지식'으로 여겨졌다. 란데르는 20세기의 사회과학이 어떻게 이 모델을 차용했는지, 또한 (특히 [[경제학]]이) 1960~19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어떻게 사회에 대한 특정 언어와 관념을 채택하여 발전 기획으로 제도화하였는지 보여 준다. 미뇰로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전 세계적인 상업적 헤게모니에 발맞추어 19세기부터 모든 스페인어권 라틴아메리카의 지배적 지식이 기본적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 언어로 생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지식이란 이처럼 명백하게 [[지정학]]적이다. 두셀은 '유럽중심주의 신화'를 논한다. '유효'하다고 간주되는 모든 지식은 먼저 세계체제의 권력 중심에서 창출되고, 이어 여러 주변부로의 불균등 배분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주변부는 결코 지식의 생산자가 될 수 없고 수용자에 그칠 뿐이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학계와 국가를 비롯한 모든 제도권에서 벌어져 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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