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액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동일 항목 영어 위키 번역
동일 항목 영어 위키 번역
139번째 줄:
나이아가라 요새 일대를 확보한 영국군은 두 개의 원정대를 서쪽으로 파병했다. 첫 번째 원정대는 존 브래드스트리트 대령이 지휘하는 것으로 배를 타고 이리 호를 건너 디트로이트를 보강하기 위한 조치였다. 브래드스트리트는 디트로이트 주변의 인디언을 진압하고, 그 남쪽 오하이오 영토에 진입할 예정이었다. 부켓 대령이 이끄는 두 번째 원정대는 피트 요새를 나와 서쪽으로 진군하여, 오하이오에 두 번째 전선을 만들려고 하였다.
 
[[1764년]] 8월, 브래드스트리트는 약 1,200명의 병사와 윌리엄 존슨에 의해 징병된 인디언 동맹 대표단과 함께 슐로서 요새를 출발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인디언을 힘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전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8월 12일]]에 [[이리 호]] 강풍 때문에 프레스 섬에 머물렀을 때, 구야스타가 이끄는 오하이오 인디언 부족 대표와 화해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단순한 정전 이상의 평화 협정을 맺고,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던 부켓 원정대를 멈추게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월권행위를 하고 말았다. 게이지와 존슨 그리고 부켓은 브래드스트리트가 월권행위를 했다는 것을 듣고 격분했다. 게이지는 브래드스트리트가 속아 오하이오 영토에 대한 공격 임무를 포기했다고 생각했고, 그 협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이지가 옳았지도 모른다. 오하이오 인디언 부족은 9월에 실시된 브래드스트리트의 2차 회의에서 약속한 포로를 반환하지 않았으며, 일부 쇼니족들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의 협력을 얻으려고 했다.<ref>For Bradstreet along Lake Erie, see White, ''Middle Ground'', 291–92; McConnell, ''A Country Between'', 199–200; Dixon, ''Never Come to Peace'', 228–29; Dowd, ''War under Heaven'', 155–58. Dowd writes that Bradstreet's Native escort numbered "some six hundred" (p. 155), while Dixon gives it as "more than 250" (p. 228).</ref>
 
브래드스트리트는 자신의 승인되지 않은 외교가 상관의 분노를 샀다는 것을 모른 채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8월 26일]], 디트로이트 요새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조약 협상을 벌였다. 브래드스트리트는 협상에 불참한 폰티액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오타와 족 지도자가 회의장에서 보낸 평화의 벨트를 산산조각 냈다. 사학자 리처드 화이트에 따르면, “이런 행위는 유럽 대사가 제안한 조약에 오줌을 싸는 행위에 거의 같고, 참석한 인디언들에게 충격과 모욕을 주는 것이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인디언들이 협상 결과, 영국의 주권을 인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존슨은 인디언에게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지역의 영국군 요새를 강화하고, 재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의 외교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었다.<ref>For Bradstreet at Detroit, see White, ''Middle Ground'', 297–98; McConnell, ''A Country Between'', 199–200; Dixon, ''Never Come to Peace'', 227–32; Dowd, ''War under Heaven'', 153–62.</ref>
 
=== 폰티액과의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