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액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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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액 전쟁은 전통적으로 인디언 측의 패배로 간주되어 왔지만<ref>Peckham, ''Indian Uprising'', 322.</ref>, 현대의 학자들은 군사적 교착상태로 여기고 있다. 인디언은 영국군을 몰아내는데 실패했지만, 영국도 인디언을 정복하지 못했다. 전장에서의 승리가 아닌 협상과 중재로 전쟁이 끝난 것이다.<ref>Dixon, ''Never Come to Peace'', 242–43; White, ''Middle Ground'', 289; McConnell, "Introduction", xv.</ref> 인디언은 영국 정부에 애머스트의 정책을 포기시켰고, 프랑스 - 인디언 동맹에서 정형화되었던 인디언 교류 방식을 답습하여 일종의 승리를 쟁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ref>White, ''Middle Ground'', 305–09; Calloway, ''Scratch of a Pen'', 76; Richter, ''Facing East'', 210.</ref>
 
영국 정착민과 인디언과의 관계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 때 극도의 긴장 관계에 있었지만, 폰티액 전쟁 동안에 오히려 완화됐다.<ref>Calloway, ''Scratch of a Pen'', 77.</ref> 사학자 데이비드 딕슨은 “폰티액 전쟁은 양측 모두 학살의 광기에 취해 버린 듯, 그 무서운 폭력이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고 평가했다.<ref>Dixon, ''Never Come to Peace'', xiii.</ref> 사학자 다니엘 리히터는 인디언이 영국군을 몰아내려는 한 것과 팩스턴 보이즈가 백인 사회에서 인디언을 없애려고 한 것을 [[인종 청소]]의 예라고 생각했다.<ref>Richter, ''Facing East'', 190–91.</ref> 전쟁에 관련된 양측 모두 정착민과 원주민은 본질적으로 다르며, 공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리히터는 이 전쟁이 “모든 원주민은 ‘인디언’이고 각 유럽계 미국인은 ‘백인’이며, 한쪽은 다른 한쪽을 파괴하기 위해 결속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져 오게 되었다.”고 평했다. <ref>Richter, ''Facing East'', 208.</ref>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