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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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왕은 왕조 연대기에서는 라마티보디라고 하는 이름으로 기술되고 있다. 왕이 즉위할 시기에 스판나품 왕가의 협력이 절실했고, 이후에는 대수코타이 정책으로 인해 두드러지게 된다.
 
라마티보디 1세는 국내를 통일하고, [[실론]]으로부터 승려를 불러 [[소승불교]]를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지정하고 동시에 힌두의 법전인 다르마샤스트라나 타이에서의 관습을 바탕으로 법전(삼표법전)을 정비했다. 삼표법전은 근대적인 법전이 정비되는 19세기까지 타이의 기본 법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14 세기말까지 아유타야 왕조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하였지만, 동남아 지역을 완전히 압도할 만큼의 인구는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쇠퇴하고 있던 [[크메르 제국|크메르 왕조]]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베트남]]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라마티보디는 말년 [[1362년]] [[앙코르 왕조]]를 공격해 아유타야의 영토의 확장을 꾀하였다. 그러나 아유타야는 [[앙코르 유적|앙코르]]를 완전한 장악하지 못했다. 수코타이 왕국과의 관계는 수코타이가 아유타야에 조공을 바치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 후 100년 후에 아유타야 왕조가 수코타이를 병합해 수코타이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유타야에 새롭게 흥한 스판나품 왕가와 수코타이의 왕가와의 인척 관계를 강화하여 그 후에도 수코타이 왕가는 명맥은 겨우 유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