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식민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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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전쟁==
{{참고|미국 독립 전쟁}}
“유익한 태만”이라고 했던 식민지 지배가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763년 선언]]〉을 통해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미국인의 진출을 규제했다. 이것이 ‘영국인’으로 전쟁에 협력한 식민지 개척민들의 분노를 사게되었다. 영국은 전비 지출의 증대로 인한 재정난에 빠졌으며, 지금까지의 느슨한 식민지 지배로부터 엄격한 산업통제로 돌아서 《설탕법》(1764년), 《인지세법》(1765년) 등을등 ‘[[참을 수 없는 법]]’을 시행하여 13개 식민지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의회에 진출한 대표가 없는 식민지 의회는 ‘무대표, 무세금’이라고 주창하고 저항하며, 일련의 세법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의회는 [[1773년]]에 [[동인도 회사]]에 차 거래를 독점하는 《차법》을 제정했기 때문에 식민지의 불만이 정점에 달했다. 인디언으로 분장한 식민지 사람들이 [[보스턴]]에 입항한 영국 배를 급습하여 차를 바다에 버린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는 등 강경하게 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1774년]] 13 개 식민지 [[대륙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1775년]], 마침내 양측은 ‘[[렉싱턴 콩코드 전투]]’에서 무력 충돌을 하게 되었고, 식민지 군은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선임하고, [[미국 독립 전쟁]]에 돌입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