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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은 [[기원전 209년]] 7월에 [[진나라]]에 불만을 품고 농민 900명을 바탕으로 [[오광]](吳廣)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진승과 [[오광]]은 순신간에 [[중국]] [[허난 성]] 일대를 점령하고 [[갈영]]이라는 농민과도 합류했다.
 
또한 수많은 농민들이 반란에 가담해 불과 1달 만에 1000기 말과 5만 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농민 반란군은 [[허난 성]]의 중심지 [[진주성 (중국)|진주성]]을 무혈입성로 함락시키고 8월에 스스로 제왕(帝王)의 자리에 올라 나라 이름을 '장초(張楚)'라 하고 [[화이양 현|화이양]](淮陽,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난 성]] [[저우커우 시]] 화이양 현|화이양]](淮陽)에 도읍하였다. 그러나 곧 부귀영화에 물들어 초심을 잃어버리고 [[갈영]]을 처형시켰다.
 
그리고 [[오광]](吳廣)에게 2만 군사를 주어 [[뤄양 시|뤄양]]을 공략하고 [[주장]]에게 3만 군사를 주어 [[함곡관]]을 돌파하도록 하였고 [[진여]]와 진승에게는 [[조나라]]의 수도 [[한단 시|한단]]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장수 [[장한]]의 대공격으로 [[주장]]이 [[함곡관]]에서 자살하고 [[오광]]마저 부하 [[전장]]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