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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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륙회의==
제2차 대륙회의는 [[1775년]] [[5월 10일]]에서 [[1781년]] [[3월 1일]]까지 개최된 미국 [[13개 식민지]]의 대표자 회의이다. 제2차 대륙회의가 열리기 전에, [[1775년]] [[4월 19일]]의 ‘[[렉싱턴 콩코드 전투]]’로 [[미국 독립 전쟁]]의 포문이 열리게 되었다. 회의는 훨씬 강력한 적과의 전쟁에 직면하여 군사동맹의 결정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3개월은 손발도 잘 안맞고, 협조도 되지 않는 싸움이 되었다. 무기고를 점령하고 영국 장교를 추방하고, 보스턴 시에서 영국군을 포위했다. [[1775년]] [[6월 14일]],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식민지군이 결성되어 [[조지 워싱턴]] 장군이 다음날 총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7월 6일]], 13개 식민지에서 무기를 들고 봉기할 논거와 필요성을 언급 〈대의의 선언〉을 승인했다. [[7월 8일]], 화해의 시도로 〈올리브 가지 청원서〉가 영국 왕에게 보내졌지만, 영국 왕 [[조지 3세]]는 수령을 거부했다. [[사이러스 딘]]이 프랑스에 대륙회의의 공사로 파견되었다. 미국의 항구는 〈[[항해법]]〉을 무시하고 개항하였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