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용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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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크롬비는 코네티컷과 뉴저지의 식민지의 예비군에게 오후 2시경 교전을 벌이라고 명령했지만, 2시 30분경에 그 공격도 실패로 돌아갔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에버크롬비는 부대를 철수시켜려 했지만, 유명한 번호를 가진 부대, 특히 영국군 좌익 제42연대와 제46연대가 공격을 고집했다. 오후 5시경, 42연대는 자포자기로 전진을 했고, 실제로 프랑스 요새의 성벽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흉벽을 타고 간신이 올라간 병력들은 총검을 장착한 프랑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영국군의 목격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군의 너무나 빨리 무너졌다” 또 다른 증인은 “잔디처럼 잘려나갔다.”고 적고 있다. 밤이 될 때까지 이어진 공방에서 많은 사상자만 남기고 퇴각했다.
 
결국, 에버크롬비 전황이 대참사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각 부대의 병력을 모아 조지 호수의 상륙 지점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어두운 숲 속을 후퇴하는 병력들은 패닉에 빠졌고, 그들 사이에 프랑스가 공격해 온다는 소문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영국군은 조지 호수를 배로 이동하여, 해질녁에 남단 기지에 도착했다. 참전자 중 일부는 이 굴욕적인 퇴각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아트머스 워드 중령은 ‘부끄러운 퇴각’을 했다고 썼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