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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885년]] 군국기무아문 협판, 병조 판서, 한성 판윤, 이조·형조·예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886년]] 조선 정부의 친러 거청(親露拒淸) 정책에 반대하여 [[위안스카이]](원세개)에게 이를 밀보했다가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여 [[홍콩]]으로 망명했다.
 
뒤에 귀국하여 [[1889년]] 판의금부사·[[1894년]] 선혜청 당상이 되었다. 대한제국 성립하자 [[1898년]] 의정부 찬정이 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이 성립하자 고종 폐위 음모에 관련되어 [[홍콩]]으로 망명, [[1910년]] [[한일 합방]] 소식을 들었음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그는 [[상하이]]에서 체류하다 [[1914년]] 죽었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