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2세 (신성 로마 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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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593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그의 무능함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케레츠테스 전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이 궤멸되어 한순간에 방어선이 무너져 빈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그나마 술탄 [[매메트 3세]]가 전쟁에 염증을 느껴 이스탄블로 귀환했지만 전쟁은 13년이나 이어져 [[트란실바니아]]에서 [[보크스카이 이스트반]]을 주측으로 한 반란이 일어났고 합스부르크 가 또한 루돌프 2세의 자질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가문 전체가 마티아스에게 전쟁을 종결시킬 전권 넘기게 압박하자 하는 수 없이 전권을 줘야 했고 마티아스는 헝가리의 작은 마을인 지트바토록에서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곧 헝가리인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온갖 실정을 거듭하던 루돌프 2세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에 루돌프 2세는 [[보헤미아]]로 달아나 당시 신교로 기울고 있던 그곳 귀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종교적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나 곧 겨우 얻은 군사력 또한 사상 누각이라는 것을 알고 마티아스와 표면적으로 화해, 그에게 헝가리 왕위, 모라비아 변경백위, 오스트리아 대공위를 넘기고 만다. 이후 루돌프 2세는 거의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된 마티아스에게 대항하기 시작하려 했으나 보헤미아 귀족들과 약조한 것을 그저 넘어가려 하자 귀족들은 루돌프 본인의 제가도 없이 독단적으로 [[하인리히 마티아스 폰 투른]]을 수장으로 한 10명의 자유 수호자들을 선출 루돌프 2세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루돌프는 이들에게 굴복해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칙서를 내리고 만다.
 
그 뒤 루돌프 2세는 본격적으로 마티아스에게 대항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와 세금이 필요하게 되었고 곧바로 빈 영지들을 흡수하기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변에 적지 않은 반발을 낳았고 마티아스 대신 스트라스부르크와 파사우의 주교이자 사촌인 [[레오폴트 대공]]을 또다른 후계자로 내세우게 된다. 이후 파사우에 비밀리 용병대를 모집해 마티아스를 노리려고 하나 제정적으로 적자가 되어 임금이 체불되자 용병대는 독단으로 보헤미아를 향해 행군하기 시작 이내 일대를 약탈하기 시작한다. 파사우의 용병대의 존재를 알게 된 보헤미아인들은 루돌프 2세가 칙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를 우려하기 시작, 용병대를 모집한 루돌프 2세에게 분노를 느꼈고 10인의 자유 수호자들은 황제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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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오스트리아 대공]]
[[분류:빈 출신]]
 
[[fr:Rodolphe II du Saint-Em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