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슈토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Makecat-bot (토론 | 기여)
잔글 r2.7.3) (로봇이 더함: zh:维利·斯多夫
Chobot (토론 | 기여)
잔글 봇:인터위키 링크 28 개가 위키데이터Q2610 항목으로 옮겨짐. 이동 완료.; 예쁘게 바꿈
3번째 줄:
'''빌리 슈토프'''({{llang|de|Willy Stoph}}, [[1914년]] [[7월 9일]] ~ [[1999년]] [[4월 13일]])는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정치인이며, [[독일 민주 공화국]]의 총리(1964~73, 1976~89)를 지냈다.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이듬해 그의 아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제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하였다. [[1928년]] 어린 슈토프는 독일 공산 청년 연맹에 가입하였다가, [[1931년]]에는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또한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독일 국방군|베르마흐트]]에서 복무하였다가,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재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철십자 훈장]] 2등상을 수상하였다.
 
독일 민주 공화국의 설립에 이어, 슈토프는 [[독일 통일사회당|통일사회당]] 중앙 위원회의 회원이 되었고, [[1950년]]에는 인민 의회의 의원이 되었다. 또한 내무장관(1952~55), 국방장관(1956~60)을 역임하였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발터 울브리히트]]가 사망하자, 슈토프는 당 서기장이 되면서 동독의 국가 원수를 겸하였다. [[1976년]] 인민 의회 선거 후에 국가와 당의 지도자 조직이 재정리되자, 슈토프는 총리에 재임하였다.
 
총리로서 슈토프는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여러가지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 일은 동서독 지도자들의 최초의 만남으로 주목되었다. [[19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의 축출에 이어, 슈토프와 호네커 내각의 단원 44명이 국민의 압력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1월 8일]]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는 슈토프 대신에 [[한스 모드로프]]를 후보로 임명하였다. [[1989년]] [[12월]]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후에 건강 악화로 인하여 구금을 면하였다. [[1994년]] 베를린 법원은 슈토프가 저축한 20만 [[독일 마르크]] 소유에 돌아가면 안 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1999년]] [[4월 13일]] 베를린에서 사망하여 [[빌다우]]에 안장되었다.
26번째 줄:
[[분류:베를린 출신]]
[[분류:동독의 장관]]
 
[[ar:فيلي شتوف]]
[[be:Вілі Штоф]]
[[bg:Вили Щоф]]
[[ca:Willi Stoph]]
[[cs:Willi Stoph]]
[[da:Willi Stoph]]
[[de:Willi Stoph]]
[[en:Willi Stoph]]
[[es:Willi Stoph]]
[[fi:Willi Stoph]]
[[fr:Willi Stoph]]
[[he:וילי שטוף]]
[[hu:Willi Stoph]]
[[io:Willi Stoph]]
[[it:Willi Stoph]]
[[ja:ヴィリー・シュトフ]]
[[la:Gulielmus Stoph]]
[[lt:Willi Stoph]]
[[nl:Willi Stoph]]
[[no:Willi Stoph]]
[[oc:Willi Stoph]]
[[pl:Willi Stoph]]
[[pt:Willi Stoph]]
[[ru:Штоф, Вилли]]
[[sl:Willi Stoph]]
[[sv:Willi Stoph]]
[[tr:Willi Stoph]]
[[zh:维利·斯多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