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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례'''(孫禮, ?~ [[250년]] 11월)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위 (삼국)|위나라]]의 정치가, 무장이다. 자는 덕달(德達)이며 탁군 용성현 사람이다.
 
== 행적 ==
전란 중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같은 군 사람 마이가 어머니를 찾아 주었다. [[하북 전투]] 당시 [[조조]]가 [[원상 (후한)|원상]]과 [[원희 (후한)|원희]]를 토벌하고 [[유주]]를 차지할 때 발탁되어 사공군모연이 되었다. 마이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자, 손례는 마이를 도주시키려 했으나 마이는 거절하고 자간주부 [[온회]]에게 직접 출두했다. 온회가 그 행위에 탄복하여 조조에게 상세히 아뢰자, 둘 다 사형보다 한 단계 감형되었다. 하간군승이 되었고, 영양도위로 승진했으며 노국의 상이 되어 자신의 녹봉을 들여 노산의 도적을 평정했다. 산양, 평원, 평창, 낭야군의 태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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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군 사람 [[노육]]과는 지위도 명성도 비슷했지만, 서로 감정은 좋지 못했다.
 
== 평가 ==
[[최염]]은 손례가 처음 출사했을 무렵 성글고 밝고 격하고 강인하며 결단에 능하며 …(중략-노육을 평한 부분)… 둘 다(손례, 노육) 훗날 삼공에 이르리라고 평했고, 그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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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년]] 제갈량의 2차 북벌 때는 [[강유]]의 역습으로 위군이 패하자 함정을 파 촉군을 무찌르려고 하나 이를 눈치챈 제갈량의 기습으로 크게 패배했다.
 
[[229년]] 제갈량의 3차 북벌 때는 [[사마의]]의 명령으로 [[곽회]]와 함께 무도와 음평을 방어하러 갔으나 이미 그곳을 점령한 [[강유]]와 [[왕평 (촉한) |왕평]]의 공격으로 다시 패배했다.
 
[[231년]] 제갈량의 4차 북벌 때도 참전했고 [[234년]] 제갈량의 5차 북벌 때는 곽회와 함께 [[북원]]에 요새를 마련해두고 그곳을 공격하던 촉군을 크게 무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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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생년 미상]]
[[분류:250년 죽음]]
 
[[en:Sun Li (general)]]
[[ja:孫礼]]
[[vi:Tôn Lễ]]
[[zh:孫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