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 콩코드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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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File:Thomas Gage.jpg|thumb|left|[[Thomas토마스 Gage게이지]]]]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군 보병을 ‘[[레드코트]]’나 ‘악마’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1768년]] 이후 보스턴을 점령하고 [[참을 수 없는 법]]을 강요했으며, 해군과 해병대까지 동원하여 [[보스턴 차 사건]]과 같은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법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밀어부쳤다. 총독 [[토머스 게이지]]는 보스턴을 한 걸음 벗어나면, 통제가 되지 않았다. 다수의 패이트리트와 소수의 왕당파 사이에 긴장 관계가 그 정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게이지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패이리트 민병대로부터 군수 물자를 회수하려고 생각했고, 신속한 소규모의 비밀작전을 시작했다. 이러한 보급품에 대한 갈들은 한번은 영국군의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이어진 수차례의 무혈 작전은 패이트리트들의 성공으로 돌아갔다. 게이지는 스스로 자유의 벗이라고 생각했고, 식민지 총독과 점령군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구분하려 했다. 영국 본국의 하원 의원이며, 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게이지의 매사추세츠 식민지와의 대립관계에 대해 영국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영국인이 다른 영국인을 예속하도록 설득시키기란 적합하지 않은 민족이다.”<ref name="Fischer30">[[#Fischer|Fischer]], p. 30</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