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우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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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고조 [[유지원 (후한)|유지원]](劉知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출처|일설에는 조카라고 한다}}. 주왕(周王)으로 봉해졌으며, 아버지 유지원의 사망과 함께 즉위를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추밀사의 [[양빈 (후한)|양빈]](楊邠)과 부추밀사 [[곽위]](郭威)의 권력을 제어할 수 없었다.
당시 실력자인 [[소봉길]](蘇逢吉)과 양빈의 사이에 권력 암투가 있던 관계로, 내분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 혼란에 즈음해, 하중(河中)의 [[이수정]](李守貞), 장안의 [[조사관]](趙思綰), 봉상(鳳翔)의 왕경숭(王景崇)이 연달아 반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당시 후한은 메뚜기때와 수해의 피해가 심각하여, 점점
{{전임후임
|전임자 = 아버지 [[유지원 (후한)|유지원]]
|후임자 = (멸망)<br />[[북한 (십국)|북한]] [[유숭]], [[후주]] [[곽위]]
|대수 = 2
|직책 = [[후한 (오대)|후한]]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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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950년 죽음]]
[[분류:암살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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