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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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교전국1={{USA}}
|교전국2={{JPN국기|일본 제국}}
|지휘관1=[[홀랜드 스미스]]
|지휘관2=[[구리바야시 다다미치]]†<br />[[니시 다케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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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1945년]] [[2월 19일]], 미군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3월 17일]]에 미군은 섬을 장악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군 부대가 전멸했다. [[3월 21일]]에 [[일본 제국|대일본제국]] [[대본영]]은 3월 17일에 이오지마 섬에 있던 일본군이 '옥쇄'(玉砕)했다고 발표했다. [[3월 26일]],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대장 이하 남은 300명의 일본군이 마지막 돌격을 했으나 전멸했다. 이것으로 인해 조직적인 전투는 종결되었다.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 병력 중, 2만 129명이 전사했다. 피해율은 9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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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이오 섬|이오지마]] [[도쿄]] 남쪽의 1,080킬로미터에, [[괌]] 북쪽 1,130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오가사와라가잔 제도열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섬의 표면이 대부분 [[황|유황]]의 축적물로 뒤덮여 있어 '이오 섬'({{lang|ja|硫黄島|이오지마}}, 유황 섬)으로 불렸다. 토양은 화산재라 보수성이 없었고, 식수나 용수는 짠 우물물이나 빗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유황의 채굴이나 사탕수수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이 1,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1941년]] 개전 당시, 해군 전투대 약 1,200명과 육군 병력 3,700명 내지 3,800명을 인근 [[지치지마 섬]]에 배지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가 이오지마를 관할하고 있었다. 개전 후에 남방 전선과 일본 본토를 묶는 항공 수송의 중계지점으로서 이오지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해군이 이오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병 1,500명과 항공기 20기를 배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