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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泉野錄 by 黃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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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梅泉野錄)은 구한말 시기 유생 학자이자, 재야문인 [[황현]]이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쓴 기록물이다. 총 6권 7책으로 되어 있다. [[황현]]은 [[1910년]] [[경술국치]] 의 16일 뒤에 자결했는데, 그 16일 동안의 사항은 고용주(高墉柱,1865~1930)가 기록했다. '매천'은 황현의 호이다.
 
== 개요 ==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즉위 1년차인 [[1863년]]/[[1864년]]부터 [[갑오개혁]] 연도인 [[1894년]] 이전까지는 큰 사건들만 기록됐고 [[갑오개혁]]을 전후한 시점부터 [[1910년]]까지는 상세히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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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황현이 고향에 칩거한 이후로는 신문이나 저잣거리의 풍문, 지인들이 전하는 소식들도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 야록을 직접 근거로 사용할 때는 출처나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 야록의 한계 ==
매천야록에는 서양인들이 아이들을 잡아 삶아 먹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집집마다 아이들 간수에 정신없었다고 쓰고 있는 [[1890년]] 전후의 기록을 보면 정말로 황당무계한 거짓말이 세상을 어지럽혔던 시기였고 당시 조정이나 정부에서는 유언비어를 막아보려는 조치를 취했는데 비변사나 포도청은 유언비어를 금한다는 포고문을 종로에 나붙였다. 전쟁,공황,재해,정치적 혼란 등 심각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공포감은 사소한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고 실제로 [[1923년]] 여름 도쿄 대지진 때는 조선인이 방화하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1938년]] [[1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보고서를 보면 [[1937년]]의 유언비어 관련자 검거 통계가 있다. [[7월]] 40명,[[8월]] 79명이던 것이 [[9월]] 53명,[[10월]] 34명,[[11월]] 15명,[[12월]]에는 6건 등으로 줄어갔다는 것이다. 바로 [[일본]]이 [[중국]]에 침략하면서 [[조선]] 안에서도 긴장이 고조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일제]]가 이를 통제하려고 노력했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매천야록의 내용은 혼란기를 겪으면서 황당한 소문처럼 검증되지 않은 당시 상황의 기록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00700221|제목=조선시대도 '유언비어' 처벌했다|성=|이름=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작성일자=2008-10-08|출판사=한국경제|확인일자=2013-03-20}}</ref><ref>{{서적 인용|저자=정동호|제목=매천야록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구한말의 과거사 진상|꺾쇠표= 예|연도=2011.11.15|출판사=일문서적|ISBN=9788996747109}}</ref>
 
 
== 같이 보기 ==
{{위키자료집|글쓴이:황현|황현}}
 
* [[구한말황현]]
* [[황현구한말]]
* [[갑오개혁]]
* [[경술국치]]
== 주석 ==
<references/>
 
== 기타 ==
 
{{토막글|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