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링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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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9월, 링컨은 새러토가 근처에 있던 [[호레이쇼 게이츠]]의 부대에 합류하여 새러토가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뒤꿈치에 머스켓 총알을 맞은 상처 때문에 차 새러토가 전투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때의 상처로 한쪽 다리가 짧은 상태가 되었다. 이 상처가 아물자 링컨은 1778년 9월에 남부 방면 군의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링컨은 1779년 10월 9일의 조지아의 사바나 공격에 참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으로 철수를 하도록 만들었다. 링컨에게는 운이 나쁜, 찰스턴 시내로 몰리고 포위되었다.
 
[[1780년]] [[5월 12일]]에는 영국군의 [[헨리 클린턴]] 장군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립 전쟁에서 대륙군 최대의 패배였다. 링컨은 항복 있어서, 전사의 명예를 부정당하게 되고 마음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링컨은 포로 교환 식으로 석방되었지만, 해제됐지만, 조사위원회에서는 어떤 허물도 문제되지 않았다. 링컨은 곧바로 워싱턴의 주력 부대로 돌아가 남쪽 버지니아에 가서, [[1781년]] [[10월 19일]]의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의 항복까지 큰 역할을 했다. 이 항복은 콘월리스 경이 패배의 굴욕을 느끼고 워싱턴 장군에 직접 군도를 전달하는 항복 의식을 거부했다. 결국 부관의부관인 찰스 오하라가 콘월리스 대신 서게 되었으며, 워싱턴의 부관이었던 링컨이 콘월리스의 군도를 받았다.
 
==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