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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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하는 한편, 백제 땅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이어 남침해 오던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격파하여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당나라의 수군]]을 섬멸하여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었다(676년). 하지만 옛 [[고구려의 영토]]인 대동강 이북과 [[만주 일대]]를 차지하지 못하여,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뒤이어 한반도 북쪽과 만주 일대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들어서면서 남북국 시대가 형성되었다.
 
남북국시대는 남과 북에 두 나라(二國)가 있다는 것인데, "통일(統一)신라", 또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는 오직 신라만을 인정, 발해를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므로 잘못 되었다는 반성이 학계에 일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학계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켰으며 "통일의 신라"(统一的新罗)라는 용어를 현재 사용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학계의 이러한 약점은 신라를 중심으로 기술한 『삼국사기』의 영향이 크며, 반도사관을 정당화하려는 일제식민주의사학에 의해 강하게 뿌리내렸다. 또한 유신정권시절 전국에 김유신동상과 사당이 세워지는 등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신라를 정통으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잘못된 용어라고 지적하며 대신 "신라의 삼국해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남북국 시대 신라의 발전: 왕권의 강화와 제도의 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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