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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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전투'''(Battle of Princeton)는 [[미국 독립 전쟁]] 중 [[1777년]] [[1월 3일]]에, 뉴저지의 프린스턴 근처에서 [[대륙군]]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대륙군은 불과 10일 사이에 [[트렌턴 전투]]에서 승리에 이어, [[애순핑크 크릭 전투]], [[프린스턴 전투]]까지 승리함으로써 세 번의 연승은 이전까지 연패를 당하던 대륙군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1777년]] [[1월 2일]],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트렌턴의 [[애순핑크 크릭 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퇴했다. 그날 밤, 워싱턴은 진지에서 작전을 열어, [[찰스 콘월리스]]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군을 돌아, 프린스턴을 수비하는 영국 부대를 공격으로 결정했다. 대륙군의 [[휴 머서]] 준장의 부대가 영국군 찰스 모후드 중령이 지휘하는 2개 연대와 충돌했다. 머서의 부대가 밀렸기 때문에 워싱턴은 존 캐드월래드 장군이 지휘하는 민병대를 구원군으로 파견했다. 이 민병대는 머서 부대가 도망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달아나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원군과 함께 말을 타고, 도망간 민병들을 수습하여 고무시켰다. 워싱턴은 이어 모후드 부대에 대한 공격을 이끌었고 적을 쫒아냈다. 모후드가 철수 명령을 내리자 대다수 군인들이 트렌턴에 있는 콘월리스 부대 방향으로 도망 쳤다. 프린스턴 도시는 [[존 설리번]] 장군이 나소 홀에 도망쳐 있던 영국군을 항복시키고, 전투가 끝났다. 이 전투 후, 워싱턴은 그 부대를 뉴저지 [[모리스타운]]으로 이동시켰다. 영국군은 10일 동안 세 번의 패배를 당하면서, 뉴저지 남부를 포기했다. 대륙군 병사의 사기가 올라 더 많은 사람이 대륙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겨울에 열린 워싱턴 뉴저지 방면 작전에서는 마지막 주요 전투가 되었다.
 
전쟁터는 현재 프린스턴 전장 주립 공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