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둔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Almust (토론 | 기여)
Almust (토론 | 기여)
32번째 줄:
이들 부대는 삼둔자에 이르러 독립군을 발견하지 못하자 분풀이로 무고한 양민만 살육했는데, 독립군은 삼둔자 서남쪽 야산 요지에 잠복하였다가 이들을 공격하여 섬멸시켜 버렸다. 이것이 바로 삼둔자 전투로서 [[일본군]]이 처음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영토로 불법 출병해 독립군과 전투를 벌이다 참패를 당한 것이다.<ref name="yunghans76"/> 대한북로독군부의 최진동(崔振東)은 독립군을 매복시켜 놓고 유인해 남양수비중대를 격멸시켰다. 아라요시는 잔존 병력을 끌고 급히 도주했다.<ref name="sodae"/> 이로서 [[6월 6일]] 새벽,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에 독립군 연합부대 사령부는 1개 소대를 [[삼둔자]] 서남쪽 봉화리(烽火里)에 매복시키고, [[이화일]](李化日) 소대장이 이끄는 약간의 병력을 고지대에 배치시켜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전투에서 패한 것을 접한 [[일본군]] [[남양수비대]] 사령부와 일본군 제19[[육군]]][[보병]][[사단]]에서는 [[1920년]] [[6월 6일]] 오전 6시경 병력을 출병한다. 일본군이 잠복해 있는 독립군 부대 앞까지 추격해왔을 때는 [[6월 6일]] 오전 10시경 이었다.
 
=== 일본군의 재출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