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1 바이트 제거됨 ,  8년 전
 
=== 광주민주화 운동 재판 구형 논란 ===
1980년 광주 사태 당시 정호용은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단지 7개 공수여단을 전투준비상태로 양병하였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그가 거느리고 있던 3개 여단을 육군본부가 보내라는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3개 공수여단은 육군본부가 명하는 대로 광주로 이동하여 광주지역의 작전을 관장하고 있던 31사단 사단장 정웅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민주화세력이 주장하는 5.18 당시 전두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특전사령관이였기 차례때문에 수차례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특전사령관이였기 때문에오갔지만 특전사 소속 부대의 잔혹행위 등은 사실이 아니다아니라고 주장하였다. 1989년 열린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 소속의 진압부대들은 당시 광주 상무대에 있던 전교사에 배속됐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역사바로세우기재판에서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5.18에 관여했다는 죄로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죄목은 반란, 내란 중요임무 종사, 내란목적살인죄였다.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