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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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4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시점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클레멘스 1세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에<ref name="CE"/><ref name="ODCC self"/> [[로마]]에서 [[케르소네수스]]로 유배를 가서 채석장에서 노역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채석장에 도착했을 당시 그곳에 노역하고 있던 죄수들은 물부족으로 크게 고통받고 있었다. 이에 클레멘스 1세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보니 언덕 위에 양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는 즉시 양이 있는 곳으로 가서 곡괭이로 땅을 팠다. 그러자 그곳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 이러한 기적으로 인하여 당시 채석장에 끌려와 노역하던 많은 동료 죄수들은 물론 현지의 이교도들까지 감화되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이에 대한 처벌로서 클레멘스 1세는 배에 올라타 닻에 묶인 채 [[흑해]]로 던져져 그대로 수장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순교자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후 매년 흑해에 썰물 현상이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클레멘스 1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클레멘스 1세의 생애에 대한 초창기 문헌들에서는 그의 순교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조차 나오지 않는다.<ref>“초창기 증인인 에우세비오와 예로니모는 클레멘스 1세의 순교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http://www.ccel.org/ccel/schaff/hcc2.v.xv.iv.html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ume II: Ante-Nicene Christianity, AD 100–325 – "Clement of Rome"]</ref>
 
[[크림 반도]]에 있는 [[잉케르만 동굴 수도원]] 안에는 한때 성 클레멘스 1세의 시신이 묻혔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869년 [[키릴로스 (9세기)|성 치릴로]]는 자신이 죽기 1~2년 전에 크림 반도에 묻혀 있던 성 클레멘스 1세의 유해 그리고 유해와 같이 묻혀있던 닻을 발굴해서 [[로마]]로 가져왔다. 오늘날 성 클레멘스 1세의 유해는 [[산 클레멘테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ref name="CE"/> 두개골을 포함한 성 클레멘스 1세의 또 다른 유해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페체르쉬크 수도원]]에 모셔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