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영화 감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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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던 [[영화 감독|영화감독]] [[양주남]](梁柱南)의 주선을 받고 그의 조감독이 되면서 [[1957년]] [[영화]] 《배뱅이굿》 촬영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듬해 [[1958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육군]] [[대위]]로 예편하였으며 같은 해 [[희극]](코미디) 영화인 《공처가(恐妻家)》로 [[영화 감독|영화감독]]이 되었다. 초기에는 《공처가》와 같은 계열의 [[희극]] [[영화]]를 촬영했으나, [[1963년]] [[김승호]](金勝鎬)와 [[황정순]](黃貞順) 주연의 [[영화]] 《굴비》를 전환점으로 좀 더 진지한 영화로 전환했다.
 
대표작으로는 《굴비》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1965년]]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년 영화)|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역시 1965년작 《[[갯마을 (영화)|갯마을]]》을 비롯하여 1970년대의 작품으로 [[1977년]]작 《야행》 역시 1977년작 《화려한 외출》 등의 영화가 유명하며 1980년대 작품으로는 자신과 같은 세대의 [[영화 감독|영화감독]]인 [[이만희 (영화 감독)|이만희]](李晩熙)가 감독했던 동명(同名)의 영화 작품을 1981년 리메이크한 《만추(晩秋)》를 비롯하여 역시 1981년작 《도시로 간 처녀》 등이 있다. 기행 [[승려]]인 [[중광 (승려)|중광]](重光)을 다룬 [[1986년]]작 《허튼소리》는 [[불교]]계의 반발로 사회적인 논란 거리가 되기도 했다. 총 연출 작품 수가수만 해도 100편이 넘는 다작 [[영화 감독|영화감독]] 겸 [[연출가]]이지만 대중성과 흥행성이 조화를 이루며 질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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