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흐 블로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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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클럽에서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소련 국가대표로도 꾸준히 출장하면서 활약하였다. [[1972년 하계 올림픽]]과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폴란드 대표팀에게 밀리면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고르 벨라노프]]가 이끌던 시대의 소련은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연장 접전 끝에 16강에서 탈락하였다. 그러나, 블로힌은 1986년에 소련 국가대표팀 최초로 A매치 100경기를 돌파했으며, 은퇴까지 국가대표로 112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남겼다.
 
1990년에 선수에서 은퇴한 그는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그리스]]에서 여러 팀들의 감독을 맡았으며,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3년, 우크라이나가 유로 2004 예선에서 탈락하자 블로힌이 우크라이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월드컵 유럽 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하였다. 우크라이나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월드컵 첫 출장임에도 8강까지 올랐는데, 블로힌은 16강전 스위스와의 16강전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차마 못봐서, 선수에게 지휘를 맡기고 라커룸에서 결과를 봤다고 한다.
 
2007년에는 [[유로 2008 예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게 밀리면서 우크라이나는 예선 탈락에 그쳤고, 블로힌 감독은 사의를 표하며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후 [[FC 모스크바]]의 감독을 거쳐 현재는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의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의 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