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프루아 2세 드 브르타뉴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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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는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네 번째로 태어난 아들로, [[청년왕 헨리]]와 [[리처드 1세|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그의 형이며 [[작센 공작부인 마틸다 (잉글랜드)|작센 공작부인 마틸다]]가 누나이다. 제프리 밑으로 [[카스티야 왕비 엘레오노르 (잉글랜드)|카스티야의 엘레오노르]], [[시실리 왕비 조안 (잉글랜드)|시실리의 조안]], [[존 (잉글랜드)|존]]이 있다. 이름은 할아버지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조프루아 5세]]에서 따왔다.
헨리 2세는 [[브르타뉴]] 영지에 대한 간접 통치 정책을 변경시켜서 좀 더 직접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ref>Everard, Judith. '' Brittany and the Angevins: Province and Empire, 1158–1203'',
|성=위어
|이름=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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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꺾쇠표=예
}}</ref> 이런 작위 승계 방식은 중세 당시에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코낭이 이후에 아들을 가지게 된다면 그 아들이 적법한 공작 승계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날로 높아지던 헨리와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긴장감은 [[레반트]] 지역의 [[십자군 국가]]로 보낼 자금 모집 방법과 관련한 사소한 논쟁으로 [[1167년]]의 전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루이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브르타뉴와 자신의 프랑스 연합을 만들어 노르망디로 침공했다. 헨리는 이에 대응해서 루이의 주요 무기고인 쇼몽 쉬르 엡트를 공격해 마을을 불태우고 루이가 동맹들을 배신하고 혼자 평화 협정을 맺도록 만들었다. 그제서야 여유가 생긴 헨리는 여전히 자신의 브르타뉴 지배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획책하는 봉신들을 응징하기 위해 브르타뉴로 달려가 굴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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