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수행계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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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상종]]의 개조인 [[규기]]가 세운 [[10주]](十住){{.cw}}[[10행]](十行){{.cw}}[[10회향]](十廻向){{.cw}}[[10지]](十地){{.cw}}[[묘각]](妙覺)의 [[41위 (법상종)|41위]](四十一位){{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6314&DTITLE=%A5%7C%A4Q%A4@%A6%EC 四十一位]". 2013년 4월 10일에 확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2%AC%EC%8B%AD%EC%9D%BC&rowno=1 四十一位(사십일위)]". 2013년 4월 10일에 확인|quote=<br>"四十一位(사십일위):
보살의 수행하는 공이 점차로 성취하여 불과(佛果)에 이르는 동안의 계위(階位).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ㆍ묘각(妙覺). 이 41위를 세운 것은 자은(慈恩)의 말."}}<br style="margin-bottom: 6px"><!--


-->[[유식학]]에서는 [[보살]]의 수행 계위를 41단계 즉 [[41위 (법상종)|41위]]로 인정하고 41단계를 [[자량위]]{{.cw}}[[가행위]]{{.cw}}[[통달위]]{{.cw}}[[수습위]]{{.cw}}[[구경위]]의 [[5위 (불교)|5위]](五位)에 다음과 같이 배대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97|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97_p0322c08 T31n1597_p0322c08 - T31n1597_p0322c21]. 41위(四十一位)|quote=<br>"謂能入彼故名彼入。即是悟入唯識理性。因謂加行時。世間施等波羅蜜多。果謂通達時。出世施等波羅蜜多。彼因果修差別者。即彼因果故名彼因果。即於此中修之差別。修謂數習。即此數習於諸地中展轉殊勝故名差別即是十地。即於如是修差別中。增上戒者。謂十地中依戒而學故名增上戒。即諸菩薩所有律儀於諸不善無復作心。增上心者。謂在內心或即依心而學故名增上心。即諸三摩地。增上慧者。謂趣證慧故名增上慧。或依慧而學故名增上慧。即是無分別智。斷殊勝者。謂最勝品別自內棄捨煩惱及所知障。即是無住涅槃。"}}{{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594, T.1597|loc=제1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578&startNum=14 14-15 / 297]. 41위(四十一位)|quote=<br>"‘그것에 들어가는 원인ㆍ결과’란 능히 그것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곧 이 유식의 진여성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원인’은 가행위(加行位)<sup style="color: blue">73)</sup>에서의 세간의 보시 등의 바라밀이고, ‘결과’는 통달위(通達位)<sup style="color: blue">74)</sup>에 서의 세간을 벗어나는 보시 등의 바라밀이다. 그것의 원인ㆍ결과의 수행 차이는 그것의 원인ㆍ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ㆍ결과’라고 말한다. 곧 이 가운데 그것을 수행하는 차이이다. ‘수행’은 누누이 익힘이다. 이 누누이 익히는 것은 모든 지위에서 전전하여 뛰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차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곧 10지(地)이다.
<br>‘이와 같은 수행 차이에서의 매우 높은 계율’이란 10지 중에서는 계율에 의지해서 수학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계율’이라 이름한다. 즉 모든 보살이 갖는 율의는 모든 불선에 대해서 다시는 마음을 짓지 않는 것이다.<sup style="color: blue">75)</sup> ‘매우 높은 마음[增上心]’이란 내면에 머무는 마음이다. 혹은 마음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마음’이라 부른다. 곧 모든 삼마지이다. ‘매우 높은 지혜[增上慧]’란 깨침에 나아가는 지혜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라고 부른다. 혹은 지혜에 의지해서 배우기 때문에 ‘매우 높은 지혜’라고 말한다. 곧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이다.
<br>‘단멸의 뛰어남’이란 가장 뛰어남<sup style="color: blue">76)</sup>과 품류의 차별<sup style="color: blue">77)</sup>과 스스로 내면에서 번뇌장<sup style="color: blue">78)</sup>과 소지장<sup style="color: blue">79)</sup>을 버리는 것이다. 곧 무주열반(無住涅槃)<sup style="color: blue">80)</sup>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