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오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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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콜로미니 추기경은 1464년 [[교황 바오로 2세]](1464–1471)가 선출된 [[콘클라베]]에는 참석하였지만, 1471년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가 선출된 콘클라베에는 불참하였다. 피콜로미니 추기경은 교황의 사절로서 다른 나라로 종종 파견되곤 하였다. 바오로 2세 때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레겐스부르크 회의에 파견되었으며, 식스토 4세 때에는 [[움브리아]]에서 교회의 권위가 회복됨에 따라 그곳에 파견되었다.<ref>''The Encyclopaedia Britannica'', Vol.19, Ed. Thomas Spencer Baynes, (Henry G. Allen Company, 1890), 153.</ref> 피콜로미니 추기경은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와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선출된 콘클라베에 참석하였다. 1497년 알렉산데르 6세는 사생아 가운데 한 사람인 [[후안 보르자]]가 살해당하자 (비록 단기간에 끝났지만) [[교황청]] 개혁에 착수하였는데, 피콜로미니 추기경도 여기에 동참하였다.
 
피콜로미니 추기경은 자신의 삼촌 비오 2세가 소싯적에 집필한 각종 인본주의 서적들을 소장할 목적으로 [[시에나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서관을 하나 세웠다.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