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갈리스토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7번째 줄:
 
==혜성 단죄 교서?==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의 주장에 따르면, 1456년 출현한 [[핼리 혜성]]을 본 갈리스토 3세는 포위 공격하는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 싸우는 베오그라드의 기독교도 병사들에게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하고 이 혜성을 [[파문]]하였다고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1475년 교황 갈리스토 3세의 사후 전기에 처음 등장하며 나중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에 의해 윤색되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한다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왜냐하면 1456년 6월 29일 반포된 교황 칙서에서 갈리스토 3세는 십자군의 성공을 위해 모든 신자에게 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한 내용만 있을 뿐, 혜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스만 제국군의 포위 공격이 끝난 8월 6일까지 핼리 혜성은 유럽과 오스만 제국 어느 쪽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