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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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릴때부터 총명하고 서법에 밝았으며 자질이 아름답고 여자의 일에 숙련하였다. 관상을 잘보는 사람이 일찍이 그녀의 상을 보고 마땅히 지극히 존귀하게 될것이라고 하였는데 진 왕 [[사마소]](司馬昭)가 이 말을 듣고 그녀를 [[사마염]](司馬炎)과 결혼시켰다. 그녀는 사마염에게 아주 총애를 받아서 사마궤(司馬軌), [[서진 혜제|사마충]](司馬衷), 사마간(司馬柬), 평양공주(平陽公主), 신풍공주(新豐公主), 양평공주(陽平公主)를 낳았다.
 
[[사마소]]가 죽자 그의 남편인[[사마염]](司馬炎)이 다음 진 왕이 되자 그녀는 진 왕비가 되었으며, 그 후에 진나라를 새운후에새우고 무제로 즉위하자 그녀는 황후가 되었다. 관리들이 상주하길 한나라의 고사를 따라 그녀와 태자는 각각 탕목읍 40현을 식읍으로 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무제는 고대의 제도가 아니라고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삼촌의 은혜를 추념하여 [[조준]](趙俊)으로 하여금 고관에 현임되도록 하고 [[조준]]의 형 [[조우]](趙虞)의 딸 [[조찬]](趙粲)으로 하여금 후궁에 들어와 부인(夫人)이 되게 하였다.
[[사마염|무제]]는 [[서진 혜제|황태자]]가 제위를 감당하지 못할것이라고 여겨 비밀리에 이를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적자를 세우는 것은 나이로 하는 것이지 현명한 정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바꿀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