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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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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에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의회 (프랑스 혁명)|국민의회]]에서 계급에 상관없이 참수형에 처할 죄수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왕의 주치의이자 외과학회의 사무국장이던 안토닌 루이 박사와 파리 의료기기부의 해부학 교수인 [[조세프 이그나스 기요탱]] 박사를 필두로 이 건에 관한 위원회가 형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이탈리아]]의 “만나이아” (혹은 만나자)와 [[스코틀랜드]]의 “메이든”, 그리고 “헬리팩스 기벳” 등의 참수기구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전처럼 무딘 도끼나 교수형으로 사형수의 형을 집행하는 것은 인도적이지 않고, 형집행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에, 기구로 형을 집행하자는 주제의 논문으로 제출하였다. 기요탱은 이 기구로 사형수들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실제로 이 기구의 설계에 기요탱 박사의 공헌은 미미하고, [[안토닌 루이]] 박사가 기요탱 박사가 제안한 생각을 발전시켜, 설계한 뒤 이 기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 사형기구가 루이종, 또는 루이세트로 불렸으나, 언론에서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조세프 이그나스 기요탱|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따서 이름붙여졌다. 그 결과 기요탱 박사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단두대의 구조는 2개 기둥이 맨꼭대기에 연결되어있고 두 기둥 사이에 날이 비스듬한 묵직한 [[무쇠]]칼이 끼워져 있다.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끊으면 칼이 떨어져 목을 자르는 것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여기서 죽었으며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당통]] 역시 이 기구로 인하여 죽었고, 과학자 [[라부아지에]]도 여기에서 죽었다. 단두대로 많은 사람을 죽인 [[로베스피에르]]는 역설적으로 이 기구에 의해 죽었다. 단두대를 고안한 기요탱 박사도 단두대에서 죽었다고 전해지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1814년]] [[5월 26일]]에 자연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