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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마음작용)|탐]](貪, 탐욕){{.cw}}[[진 (마음작용)|진]](瞋, 노여움){{.cw}}[[치 (마음작용)|치]](痴, 어리석음)의 [[3독]](三毒) 또는 [[3불선근]](三不善根)은 모든 [[불선 (3성)|불선]] 또는 [[번뇌]]의 뿌리이므로, [[3불선근]]이 모든 [[번뇌]]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시켰다는 것은 [[탐 (마음작용)|탐]]{{.cw}}[[진 (마음작용)|진]]{{.cw}}[[치 (마음작용)|치]]를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것과 같은 표현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sfn|곽철환|2003|loc="[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04094&mobile&categoryId=2886 적정(寂靜)]". 2012년 10월 26일에 확인}}
 
한편, [[탐 (마음작용)|탐]]{{.cw}}[[진 (마음작용)|진]]{{.cw}}[[치 (마음작용)|치]]를 일부나마 '''소멸'''(消滅)시켰다는 것, 즉 [[번뇌]]를 일부나마 소멸시켰다는 것, 즉 [[번뇌]]를 일부나마 '''극복'''(克服)했다는 것은 '''끊음''' 또는 '''단멸'''(斷滅), 즉, '끊음으로써 소멸시킴'을 말하는 것으로, '해당 번뇌 자체를 죽였다, 해당 번뇌 자체를 파괴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번뇌로부터 떠났다'는 뜻이다. 즉 '''멀리 떠남'''의 뜻인 '''원리'''(遠離)를 말한다. 그리고, '모든 번뇌를 멀리 떠났다' 또는 '모든 번뇌를 끊었다'는 것은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더 이상 그 어떤 [[번뇌]]와도 '''[[상응]]하지 않는 것을것'''을 말한다.{{sfn|권오민|2003|pp=215-229|quote=<br>"[아비달마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모든 번뇌는 실유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소멸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찰나찰나 생겨나는 순간 소멸하지만(이를 無常滅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반을 의미하는 번뇌의 단멸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멸하는 순간 동류의 또 다른 번뇌가 상속함으로써 우리들 경험상에 '번뇌'라고 하는 지속된 심리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번뇌를 끊는다' '번뇌를 끊어라'고 말하지 '번뇌를 소멸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번뇌를 끊는다'고 함은, 마음이 더 이상 번뇌의 온갖 심소心所와 동시생기(俱生)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상속상에 획득되지 않게 될 때, '번뇌가 단멸斷滅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전자의 수행도를 무간도無間道라 하고, 후자의 수행도를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 예컨대 전자가 도둑을 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적정안온의 열반은 바로 이 같은 번뇌의 단멸에서 증득되는 것으로, 그것은 오로지 더 이상 번뇌를 수반하는 일이 없는 지혜의 힘, 무루 간택력簡擇力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택멸'이라고도 한다. 온갖 번뇌를 비롯한 모든 존재(諸法)의 참다운 관찰만이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비달마의 목적이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오로지 4제에 대한 통찰과 무루 간택력에 따른 예지만이 그들을 번뇌 단멸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